앞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을까 한다. life

나는 개고기를 좋아한다.

전골도 좋지만 기름 빠지게 잘 익은 수육에 부추를 얹어 소주한잔 입에 털고 겨자식초참기름들깨를 비빈 소스에 찍어 한입 먹으면 '입안에서 녹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아직 늙지 않은 몸(?)인지라 보양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적어도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혹여 다른 누군가에게 비난받을 수도 있는 행위를 함께 함으로서 생기는 동료의식 따위를 느끼게 해준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오리, 등심, 치킨 등에 비해 개고기는 맛있다. 이 모든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리고 나는 개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다닐 적 병들어 다 죽어가는 강아지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간 기억도 있고, 집에서 키우던 늙은 개가 죽어 장농 이불에 머리를 쳐박고 하루종일 울었던 추억도 있다.

지금도 매주 동물농장의 개박사 아저씨를 보며 그 능력에 감탄하고 있으며, 얼마 전 황구(찐자, 극복이) 구타 사건에 가장 무서운건 인간이라며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사실 학창시절 청량리 시장이나 모란 시장 등에서 철창에 갇혀 다른 의미에서의 주인을 기다리는 황구들을 본 경험도 있었지만 내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강아지와 찜통에 쪄져서 고기로 나오는 수육을 동일시 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미안해, 고마워"라는 영화를 봤다. 출발 비디오 여행 따위의 프로에서 소개하는 걸 보면서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영화를 본 뒤 펑펑 울며 앞으로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얘기를 주변에 하자 대부분의 반응은 "개 잡는 모습이 잔인하긴 하지.."나 "돼지나 소도 잡는거 보면 못먹는다" 였다. 사실 "미안해 고마워"에서는 잔인하게 개를 잡는다거나 개고기를 먹지 말아달라거나 하는 등의 행위를 크게 다루진 않는다.(여러 단편 영화 중 한편에서 개를 묶어 매다는 행위를 하긴 하지만 크게 잔인하게 묘사했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영화에 나온 어떤 노숙자들이 다른 노숙자의 반려견을 먹기 위해 훔쳐 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동생 보리를 잃어버린 꼬맹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또 그 보리를 모자 쓴 어떤 아저씨가 어딘가로 끌고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때 동물농장에서 극복이를 잡아먹기 위해 구타한 범인과 내가 결국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인정하면서 귀여운 강아지와 냄비안의 고기를 내가 동일시 시키지 못한 것이 아니라 동일시 시키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단지 개고기가 먹고 싶어서-


이 포스팅은 개를 좋아하면서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 또한 영화 한편에 마음이 동하여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훗날 어느 취한 자리에서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를 좋아한다면, 또 극복이가 두드려 맞은 모습을 보고 슬퍼했다면, 그리고 개고기가 너무 맛있다면.
"미안해 고마워"를 한번 쯤 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쨋든 나는 이제 개고기를 끊으려한다. 몇번의 실패는 있을 것 같지만. 10년전 담배도 그렇게 끊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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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미스트 2011/07/14 19:52 #

    육식에 대한 문제도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소나 돼지 등 흔히 먹는 고기는 괜찮지만 다른 동물고기는 못먹겠다는 경우도 있고,
    소 돼지도 못먹겠지만 닭이나 오리는 괜찮겠다는 경우도 있고,
    생선 정도는 괜찮지만 육지에서 사는 동물 고기는 못먹겠다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생선 모양을 유지하고 있으면 못먹지만 비늘 벗기고 살 발라내 요리한건 먹을 수 있다거나,
    생고기는 못먹지만 햄 등으로 가공한건 먹을 수 있다거나.... ....

    그런 판단들이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주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야말로 '취존중'이 필요한 영역이겠죠.
  • 벙쪄 2011/07/15 07:09 #

    맞는 말씀입니다. 어디까지나 취향이니 존중이 중요하죠 ㅋ

    마침 어제 회식을 하게 되어 개를 먹으러 가자는 팀장님께 오늘부터 안먹으려고 한다고 말씀드리자 제 의견을 존중해주셔서 등심으로 메뉴를 바꾸시더라구요.

    저도 먹는 것도, 먹지 않는 것도 본인의 취향이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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